[카테고리:] 생활정보

  • 올해 처음으로 오이지를 직접 담가봤다

    여름만 되면 밥상에 시원한 오이지 한 접시가 그렇게 당긴다. 사 먹으면 되는데 올해는 오이가 싸게 나왔길래 직접 담가보기로 했다. 어머니가 늘 해주시던 거라 어깨너머로 본 건 있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 양 조절부터가 막막했다.

    시장에서 백오이를 한 봉지 샀다. 굵기가 고만고만한 걸로 골라 와서 흐르는 물에 박박 문질러 씻었다. 끝을 조금씩 잘라내고 통째로 큰 통에 차곡차곡 눕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진짜 고민은 소금물이었다. 너무 싱거우면 무르고 짜면 못 먹는다는데, 정확한 비율을 몰라서 결국 물을 끓여 소금을 풀고 한 숟갈 떠서 간을 봤다. 바닷물보다 조금 더 짜다 싶을 때 불을 껐다. 뜨거운 소금물을 오이에 바로 부어야 아삭하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했다.

    문제는 오이가 자꾸 둥둥 떠오른다는 거였다. 위에 뜬 오이는 곰팡이가 핀다길래 깨끗한 접시를 엎어 올리고 그 위에 물 담은 김치통을 눌러놨다. 부엌 한구석에 두고 뚜껑을 덮으니 그제야 한시름 놨다.

    사나흘 지나 통을 열어보니 오이가 누렇게 익으면서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하나 꺼내 썰어 물에 헹군 다음 참기름이랑 깨, 송송 썬 파를 넣고 무쳤다. 한 입 베어 무니 아삭하고 짭조름한 게 딱 그 맛이었다.

    처음치곤 간이 살짝 센 듯해도 찬물에 말은 밥이랑 먹으니 더위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다음엔 소금을 조금만 덜 넣어야겠다고 통 옆에 메모를 붙여뒀다. 사 먹던 걸 직접 담가 먹으니 별것 아닌데도 뿌듯했다.

  • 여름 맞이로 선풍기를 꺼내 분해해서 닦았다

    며칠 전부터 낮에 가만히 있어도 등에 땀이 배길래, 베란다 구석에 천을 덮어둔 선풍기를 끌고 나왔다. 작년 가을에 대충 접어 넣어둔 그대로라 날개 안쪽에 먼지가 회색으로 앉아 있었다. 그냥 켜기엔 영 찜찜해서 큰맘 먹고 분해부터 하기로 했다.

    앞 망 거는 부분을 더듬어 보니 양옆에 작은 걸쇠가 있었다. 손톱으로 들어 올리니 생각보다 쉽게 빠졌는데, 가운데 날개 고정하는 캡이 문제였다. 보통 나사 푸는 방향이랑 반대로 돌려야 한다는 걸 한참 끙끙댄 뒤에야 떠올렸다. 반대로 돌리니까 그제야 헐겁게 풀렸다.

    날개를 떼어 화장실로 가져가 미지근한 물에 주방세제를 풀어 담갔다. 손으로 문지르니 물이 금방 뿌예졌다. 망은 칫솔로 칸칸이 닦았는데 이게 은근히 시간이 걸렸다. 한 칸 닦고 보면 옆 칸이 또 거뭇해서 끝이 없는 기분이었다.

    제일 신경 쓴 건 물기였다. 모터 쪽엔 물이 닿지 않게 마른 수건으로만 닦고, 날개랑 망은 베란다에 한참 세워 말렸다. 덜 마른 채로 끼우면 안 될 것 같아서 다른 일 하다가 저녁때 다시 와서 만져봤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라 어렵지 않았다. 캡을 다시 반대로 돌려 꽉 잠그고 망을 딸깍 끼웠다. 콘센트를 꽂고 3단으로 돌리니 작년보다 바람이 한결 시원하고, 무엇보다 켤 때 나던 쿰쿰한 냄새가 사라졌다.

    한 시간 좀 넘게 걸렸지만, 닦은 날개에서 깨끗한 바람이 나오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여름 내내 켜둘 물건인데 이 정도 수고는 할 만했다. 내년엔 넣기 전에 미리 닦아두자고 또 다짐만 했다.

  • 거실 형광등을 LED로 직접 갈아봤다

    거실 형광등이 며칠 전부터 깜빡거렸다. 켜면 한참 끄먹끄먹하다가 겨우 들어오고, 어떤 날은 아예 안 들어와서 스위치를 몇 번씩 올렸다 내렸다 했다. 기사를 부르자니 출장비가 아깝고, 그냥 내가 LED로 갈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같은 규격 LED 등기구를 이만 얼마에 샀다. 안정기 없이 통째로 가는 거라 초보도 한다고 적혀 있어서 용기를 냈다. 박스를 열어보니 설명서가 한 장 들어 있긴 한데, 그림만 보고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제일 먼저 한 건 두꺼비집 내리기였다. 감전 얘기를 하도 봐서 겁이 났다. 의자를 놓고 올라가 기존 커버를 떼는데, 먼지가 한 손 가득 쏟아져서 재채기를 한참 했다.

    전선 연결이 문제였다. 빨강 검정 두 가닥인데 어느 쪽에 끼워야 하나 한참 들여다봤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두어 개 찾아보고 나서야 감이 왔다. 결국 극성 상관없다는 글을 보고 그냥 꽂았는데, 천장에서 팔을 위로 든 채로 작업하려니 금방 어깨가 저렸다. 커넥터가 딸깍 들어가는 느낌이 나니까 그제야 좀 안심이 됐다.

    두꺼비집을 다시 올리고 스위치를 켰더니 한 번에 환하게 들어왔다. 깜빡임도 없고 전보다 훨씬 밝아서 방이 다른 집 같았다. 혼자 한 거라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진작 할걸 싶으면서도, 전기 만지는 건 역시 무서워서 다음에 또 하라면 망설일 것 같다. 그래도 출장비 굳힌 건 확실하다.

  • 오랜만에 손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친구 생일에 뭘 보낼까 한참 고민하다가, 이번엔 그냥 편지를 쓰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편지를 써본 게 군대 있을 때였나 싶을 정도로 오래됐다. 메시지 보내면 1초인데 굳이 종이에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나도 좀 의외였다.

    문구점에서 편지지랑 봉투를 샀다. 둘이 합쳐 삼천 원이 안 됐는데, 막상 펜을 드니까 한 줄 쓰고 막혔다. 평소에 키보드만 두드리다 보니 글씨도 엉망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결국 두 장을 버렸다. 오타가 나면 지울 수가 없으니까 그게 제일 답답했다. 세 번째에야 처음부터 천천히,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자 생각하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쓰다 보니 평소엔 절대 말 못 할 얘기가 나왔다. 고맙다는 말 같은 거. 얼굴 보고는 닭살 돋아서 못 하는데, 종이에는 이상하게 술술 써졌다. 작년에 내가 힘들 때 그 친구가 늦은 밤에 전화를 받아줬던 일도 적었다. 그때는 제대로 고맙다고 못 했는데. 한 장 반쯤 채우고 나니 손이 좀 아팠고, 손목을 털어가며 마저 썼다.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여 부쳤다. 요즘은 편지 부치는 사람이 드문지 창구 직원이 살짝 웃었다. 며칠 뒤 친구한테서 잘 받았다고, 글씨 더 못 써졌다고 놀리는 연락이 왔다.

    특별한 날에만 이러는 거지 매번 쓸 자신은 없다. 그래도 그 어색한 두 장이 카톡 백 통보다 오래 남을 것 같긴 하다.

  • 거실 형광등을 LED로 바꿔 끼웠다

    거실 형광등이 며칠째 깜빡거렸다. 켤 때마다 두세 번 끔뻑이다 들어오는 게 영 신경 쓰였다. 안정기가 수명을 다했나 싶었는데, 이참에 LED로 바꿔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보니 형광등을 LED로 바꾸는 방법이 두 가지였다. 기구를 통째로 가는 방법과, 안정기를 떼고 LED 램프만 끼우는 방법. 후자가 더 싸고 간단하다고 해서 호환되는 LED 램프 두 개를 만 8천 원에 샀다.

    가장 먼저 한 건 두꺼비집을 내리는 거였다. 전기 작업이라 이건 꼭 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돼 있었다. 등 커버를 열고 보니 안정기랑 배선이 생각보다 복잡해서 잠깐 막막했다.

    다행히 영상 설명을 따라 하니 어렵진 않았다. 안정기를 거치지 않고 양쪽 소켓에 전원을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배선 두 가닥을 옮겨 끼우고 절연 테이프로 마감했다. 혹시 몰라 작업 전후로 휴대폰으로 배선 사진을 찍어뒀더니 헷갈릴 때마다 도움이 됐다. 손이 떨려서 그렇지 작업 자체는 20분쯤 걸렸다.

    두꺼비집을 다시 올리고 스위치를 켰다. 깜빡임 없이 한 번에 환하게 들어왔다. 색도 전보다 훨씬 하얗고 밝았다. 괜히 거실이 넓어 보이는 느낌까지 들었다. 가족들도 들어오자마자 등을 갈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업체를 부르면 출장비까지 5만 원은 든다고 했는데, 부품값 만 8천 원에 끝냈다. 전기라 겁이 났지만 차단기만 확실히 내리면 생각보다 할 만했다. 안방 등도 깜빡이기 시작하면 그땐 망설임 없이 직접 갈 것 같다.

  •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직접 붙여봤다

    주말에 뒷산을 오르다가 오른쪽 등산화 밑창이 반쯤 떨어졌다. 발을 디딜 때마다 펄럭거려서 결국 한 손에 신발을 들고 내려왔다. 산 지 6년쯤 된 신발이라 버릴까 했는데, 멀쩡한 갑피가 아까웠다.

    등산용품점에 물어보니 밑창 교체는 5만 원 정도 든다고 했다. 신발값이 8만 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애매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신발 전용 접착제로 직접 붙이는 사람이 꽤 많았다. 접착제는 7천 원짜리였다.

    떨어진 밑창과 갑피 사이 먼지를 칫솔로 싹 긁어냈다. 오래된 접착제 찌꺼기가 까맣게 붙어 있어서 그것도 사포로 살살 밀었다. 설명서엔 양쪽에 접착제를 바르고 10분쯤 말렸다가 붙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제는 누르고 있는 시간이었다. 접착제가 마를 동안 꽉 눌러줘야 하는데, 마땅한 도구가 없어서 무거운 책 다섯 권을 올려놓고 하룻밤을 뒀다. 다음 날 아침에 떼어보니 생각보다 단단하게 붙어 있었다.

    시험 삼아 동네 한 바퀴를 걸어봤다. 처음엔 또 떨어질까 봐 발끝에 힘을 못 줬는데, 30분을 걸어도 멀쩡했다. 일부러 보도블록 턱을 몇 번 밟아보고 살짝 뛰어도 봤다. 완벽하진 않아서 옆구리 쪽이 살짝 벌어지긴 했지만, 그 정도는 접착제를 한 번 더 발라 메웠다. 양말이 젖을까 걱정했는데 비 안 오는 날엔 문제없었다.

    7천 원짜리 접착제로 신발 한 켤레를 살린 셈이다. 물론 전문점에서 한 것만큼 깔끔하진 않다. 그래도 버리려던 신발을 다시 신는다는 게 묘하게 뿌듯했다. 다음 산행 때도 이 신발을 신고 갈 생각이다.

  • 3년 된 휴대폰을 굳이 안 바꾸고 버텨봤다

    지금 쓰는 휴대폰이 만 3년을 넘겼다. 액정 오른쪽 위 모서리에 머리카락만 한 금이 가 있고, 배터리는 오후 4시쯤이면 30퍼센트 아래로 떨어진다. 주변에선 다들 슬슬 바꿀 때 되지 않았냐고 하는데, 이상하게 바꾸기가 싫었다.

    사실 처음엔 돈 때문이었다. 신형으로 갈아타면 기깃값만 백만 원이 훌쩍 넘고, 요금제도 다시 묶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일단 배터리만 갈아보기로 했다. 사설 수리점에서 4만 원 정도 주고 배터리를 교체했더니 거짓말처럼 하루를 버티더라.

    배터리를 갈고 나니까 욕심이 좀 생겼다. 안 쓰는 앱을 한 50개쯤 지웠다. 깔아만 두고 안 열던 쇼핑앱, 한 번 쓰고 만 배달 쿠폰 앱, 출시되자마자 깔았다가 까먹은 게임들. 정리하고 나니 폰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느려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쓰레기가 쌓여서였던 거다.

    금 간 액정은 그냥 두기로 했다. 사진 찍을 때 가끔 거슬리긴 하는데, 케이스 끼우고 보호필름 붙이면 더 안 번진다고 해서 필름만 한 장 새로 붙였다. 5천 원짜리였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묘한 오기 같은 게 생겼다. 이거 4년까지 써보자, 싶은. 신상 폰이 나올 때마다 광고를 보면 잠깐 흔들리긴 하는데, 내 폰이 못 하는 게 딱히 없다는 걸 떠올리면 금세 가라앉는다. 카메라가 최신만큼 좋진 않지만 일상 사진엔 충분하다.

    결국 폰을 바꾸고 싶었던 건 폰이 느려서가 아니라 새것이 갖고 싶어서였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배터리 4만 원에 그 마음이 한참 미뤄졌으니 남는 장사다. 다음에 정말 고장 나면 그땐 미련 없이 바꿀 생각이다.

  • 새벽배송을 한 달 끊고 동네 마트만 다녔다

    새벽배송에 길들여진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자기 전에 누워서 우유랑 계란, 가끔은 사과 몇 알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르면 다음 날 문 앞에 종이박스가 와 있는 게 너무 당연했다. 문제는 그 박스가 매일 나온다는 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박스랑 아이스팩을 정리할 때마다 내가 이걸 왜 이렇게 자주 시키나 싶었다.

    그래서 한 달만 끊어보기로 했다. 앱을 지우진 않고 그냥 안 열기로 한 건데, 첫 주는 생각보다 불편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미 9시가 넘는데, 그 시간에 마트를 가려면 또 나가야 하니까. 결국 토요일 오전에 동네 마트를 한 번에 도는 걸로 정리했다.

    막상 가보니까 마트 안을 도는 게 나쁘지 않았다. 새벽배송 앱에선 사진만 보고 담았는데, 직접 보니까 애호박이 시들었는지 두부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가 한눈에 보였다. 한 번은 떨이로 나온 파프리카 세 개를 천 원에 샀는데, 앱에선 한 번도 못 봤던 가격이었다.

    대신 무거웠다. 생수 두 묶음에 과일까지 사면 양손이 끊어질 것 같아서, 결국 시장바구니 카트를 하나 샀다. 만 얼마 줬는데 이걸 진작 살걸 싶더라. 끌고 다니니까 짐 걱정 없이 이것저것 더 보게 되는 부작용도 있긴 했다.

    한 달 지나고 계산해보니 식비 자체가 크게 줄진 않았다. 다만 충동적으로 담던 게 확실히 줄었다. 새벽 한 시에 장바구니 채우던 그 묘한 기분이 없어진 게 제일 컸다. 박스 정리 안 하는 것도 좋고.

    지금은 급할 때만 가끔 새벽배송을 쓰고, 기본은 주말 장보기로 돌아왔다. 완전히 끊자는 건 아니었고, 그냥 내가 뭘 사는지 한 번은 보고 사자는 정도였다. 그 정도는 지키고 있다.

  • 1년 동안 처박아둔 에어프라이어를 다시 꺼냈다

    에어프라이어를 산 건 재작년 겨울이었다. 다들 있길래, 뭔가 나만 없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라 질렀다. 처음 한 달은 냉동만두며 너겟이며 신나게 돌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주방 한구석에서 먼지받이가 됐다. 설거지가 귀찮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다 올봄에 주방을 정리하면서 이걸 중고로 팔까 고민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오랜만에 꺼내 닦는데, 바스켓에 묻은 기름때를 보니 마지막에 뭘 해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팔기 전에 한 번만 더 써보자 싶어서 그날 저녁에 가래떡을 넣어봤다.

    이게 의외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게, 어릴 때 연탄불에 구워 먹던 그 느낌이랑 비슷했다. 꿀에 찍어 먹으면서 혼자 감탄했다. 다음 날엔 고구마, 그다음 날엔 식빵에 버터를 발라 구웠다.

    한동안 안 쓴 이유가 설거지였는데, 알고 보니 종이호일 한 장만 깔면 될 일이었다. 진작 알았으면 1년을 묵히진 않았을 텐데. 이런 게 좀 나답다 싶어서 헛웃음이 났다.

    결국 중고로 팔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요즘은 거의 매일 저녁마다 뭐라도 하나 굽는다. 비싼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한 번 정 붙이고 나니까 버리기가 아까워졌다.

  • 가계부 앱을 지우고 한 달을 손으로 적어봤다

    5년 넘게 가계부 앱을 썼다. 정확히는 깔아두기만 했다는 게 맞겠다. 카드를 긁으면 알림이 오고, 그 알림을 그냥 밀어버리는 게 전부였으니까. 연말에 앱이 정리해준 소비 통계를 보면 도넛 그래프는 알록달록 예쁜데, 정작 내가 지난달에 뭘 그렇게 샀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그게 좀 허무해서 어느 밤에 충동적으로 앱을 지워버렸다.

    다음 날 퇴근길에 문구점에서 2천 원짜리 손바닥만 한 노트를 샀다. 첫날부터 귀찮았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에 음료수 하나, 3,200원. 이걸 적겠다고 영수증을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고 집까지 들고 온 내가 좀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한 일주일쯤 지나니까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4,500원짜리 아이스라떼를 사려고 카페 앞에 섰는데, 이걸 또 노트에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손이 멈칫하는 거다. 적는 게 귀찮아서 안 사게 되는, 좀 어이없는 절약이었다.

    한 달을 채우고 결산을 해봤다. 외식비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한 달에 커피값만 6만 원이 넘게 나갔더라. 사실 중간에 사흘 정도는 적는 걸 까먹어서 기억으로 대충 메웠다. 그래서 숫자가 완벽하진 않다.

    그래도 앱 쓸 때랑은 확실히 달랐다. 숫자가 한 번 손끝을 지나가니까 머리에 남는다. 이번 달엔 노트 두 권째를 쓰고 있다. 앱은 아마 다시 안 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