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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배송을 한 달 끊고 동네 마트만 다녔다

    새벽배송에 길들여진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자기 전에 누워서 우유랑 계란, 가끔은 사과 몇 알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르면 다음 날 문 앞에 종이박스가 와 있는 게 너무 당연했다. 문제는 그 박스가 매일 나온다는 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박스랑 아이스팩을 정리할 때마다 내가 이걸 왜 이렇게 자주 시키나 싶었다.

    그래서 한 달만 끊어보기로 했다. 앱을 지우진 않고 그냥 안 열기로 한 건데, 첫 주는 생각보다 불편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미 9시가 넘는데, 그 시간에 마트를 가려면 또 나가야 하니까. 결국 토요일 오전에 동네 마트를 한 번에 도는 걸로 정리했다.

    막상 가보니까 마트 안을 도는 게 나쁘지 않았다. 새벽배송 앱에선 사진만 보고 담았는데, 직접 보니까 애호박이 시들었는지 두부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가 한눈에 보였다. 한 번은 떨이로 나온 파프리카 세 개를 천 원에 샀는데, 앱에선 한 번도 못 봤던 가격이었다.

    대신 무거웠다. 생수 두 묶음에 과일까지 사면 양손이 끊어질 것 같아서, 결국 시장바구니 카트를 하나 샀다. 만 얼마 줬는데 이걸 진작 살걸 싶더라. 끌고 다니니까 짐 걱정 없이 이것저것 더 보게 되는 부작용도 있긴 했다.

    한 달 지나고 계산해보니 식비 자체가 크게 줄진 않았다. 다만 충동적으로 담던 게 확실히 줄었다. 새벽 한 시에 장바구니 채우던 그 묘한 기분이 없어진 게 제일 컸다. 박스 정리 안 하는 것도 좋고.

    지금은 급할 때만 가끔 새벽배송을 쓰고, 기본은 주말 장보기로 돌아왔다. 완전히 끊자는 건 아니었고, 그냥 내가 뭘 사는지 한 번은 보고 사자는 정도였다. 그 정도는 지키고 있다.

  • 1년 동안 처박아둔 에어프라이어를 다시 꺼냈다

    에어프라이어를 산 건 재작년 겨울이었다. 다들 있길래, 뭔가 나만 없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라 질렀다. 처음 한 달은 냉동만두며 너겟이며 신나게 돌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주방 한구석에서 먼지받이가 됐다. 설거지가 귀찮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다 올봄에 주방을 정리하면서 이걸 중고로 팔까 고민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오랜만에 꺼내 닦는데, 바스켓에 묻은 기름때를 보니 마지막에 뭘 해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팔기 전에 한 번만 더 써보자 싶어서 그날 저녁에 가래떡을 넣어봤다.

    이게 의외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게, 어릴 때 연탄불에 구워 먹던 그 느낌이랑 비슷했다. 꿀에 찍어 먹으면서 혼자 감탄했다. 다음 날엔 고구마, 그다음 날엔 식빵에 버터를 발라 구웠다.

    한동안 안 쓴 이유가 설거지였는데, 알고 보니 종이호일 한 장만 깔면 될 일이었다. 진작 알았으면 1년을 묵히진 않았을 텐데. 이런 게 좀 나답다 싶어서 헛웃음이 났다.

    결국 중고로 팔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요즘은 거의 매일 저녁마다 뭐라도 하나 굽는다. 비싼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한 번 정 붙이고 나니까 버리기가 아까워졌다.

  • 절판된 책 한 권 때문에 헌책방을 네 곳 돌았다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책이 있다. 사두려고 마음먹었을 땐 이미 절판이었다. 온라인 중고 서점에 가끔 매물이 뜨긴 했는데, 만 원짜리 책에 3만 원, 4만 원씩 붙어 있어서 매번 장바구니에만 넣었다 뺐다 했다.

    그러다 주말에 별생각 없이 동네 헌책방에 들어갔다. 사장님께 제목을 말씀드렸더니 안경 너머로 한참 천장을 보시다가 “그건 우리도 없는데”라고 하셨다. 대신 근처 다른 가게 두 곳을 손으로 짚어가며 알려주셨다.

    그날 결국 네 곳을 돌았다. 세 번째 가게에서는 비슷한 제목에 혹해서 꺼냈다가 작가가 다른 책이라 머쓱하게 다시 꽂아두기도 했다. 다리가 좀 아팠고, 솔직히 중간엔 그냥 비싸게 주고 살 걸 그랬나 싶었다.

    마지막 가게는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구석 책장 맨 아래 칸, 무릎을 꿇고 봐야 하는 자리에 그 책이 꽂혀 있었다. 가격표엔 6천 원이라고 연필로 적혀 있었다. 정가보다도 쌌다.

    책을 받아 들고 나오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인터넷으로 3만 원 주고 샀으면 이런 기분은 없었을 거다. 책 안쪽엔 앞 주인이 적어둔 날짜와 이름이 있었는데, 그것까지 덤으로 받은 것 같아서 좋았다.

  • 가계부 앱을 지우고 한 달을 손으로 적어봤다

    5년 넘게 가계부 앱을 썼다. 정확히는 깔아두기만 했다는 게 맞겠다. 카드를 긁으면 알림이 오고, 그 알림을 그냥 밀어버리는 게 전부였으니까. 연말에 앱이 정리해준 소비 통계를 보면 도넛 그래프는 알록달록 예쁜데, 정작 내가 지난달에 뭘 그렇게 샀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그게 좀 허무해서 어느 밤에 충동적으로 앱을 지워버렸다.

    다음 날 퇴근길에 문구점에서 2천 원짜리 손바닥만 한 노트를 샀다. 첫날부터 귀찮았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에 음료수 하나, 3,200원. 이걸 적겠다고 영수증을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고 집까지 들고 온 내가 좀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한 일주일쯤 지나니까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4,500원짜리 아이스라떼를 사려고 카페 앞에 섰는데, 이걸 또 노트에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손이 멈칫하는 거다. 적는 게 귀찮아서 안 사게 되는, 좀 어이없는 절약이었다.

    한 달을 채우고 결산을 해봤다. 외식비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한 달에 커피값만 6만 원이 넘게 나갔더라. 사실 중간에 사흘 정도는 적는 걸 까먹어서 기억으로 대충 메웠다. 그래서 숫자가 완벽하진 않다.

    그래도 앱 쓸 때랑은 확실히 달랐다. 숫자가 한 번 손끝을 지나가니까 머리에 남는다. 이번 달엔 노트 두 권째를 쓰고 있다. 앱은 아마 다시 안 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