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넘게 가계부 앱을 썼다. 정확히는 깔아두기만 했다는 게 맞겠다. 카드를 긁으면 알림이 오고, 그 알림을 그냥 밀어버리는 게 전부였으니까. 연말에 앱이 정리해준 소비 통계를 보면 도넛 그래프는 알록달록 예쁜데, 정작 내가 지난달에 뭘 그렇게 샀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그게 좀 허무해서 어느 밤에 충동적으로 앱을 지워버렸다.
다음 날 퇴근길에 문구점에서 2천 원짜리 손바닥만 한 노트를 샀다. 첫날부터 귀찮았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에 음료수 하나, 3,200원. 이걸 적겠다고 영수증을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고 집까지 들고 온 내가 좀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한 일주일쯤 지나니까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4,500원짜리 아이스라떼를 사려고 카페 앞에 섰는데, 이걸 또 노트에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손이 멈칫하는 거다. 적는 게 귀찮아서 안 사게 되는, 좀 어이없는 절약이었다.
한 달을 채우고 결산을 해봤다. 외식비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한 달에 커피값만 6만 원이 넘게 나갔더라. 사실 중간에 사흘 정도는 적는 걸 까먹어서 기억으로 대충 메웠다. 그래서 숫자가 완벽하진 않다.
그래도 앱 쓸 때랑은 확실히 달랐다. 숫자가 한 번 손끝을 지나가니까 머리에 남는다. 이번 달엔 노트 두 권째를 쓰고 있다. 앱은 아마 다시 안 깔 것 같다.